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📘 문순득과 정약전 | 표해시말 시리즈 3부_“섬 너머의 섬” – 여송국(필리핀) 체류기

dotomssi 2025. 4. 10. 06:00

 

안녕하세요. 키갈남입니다 😊

오늘은 조선 어부 문순득이 도착한 세 번째 땅,

바로 여송국(呂宋國), 지금의 필리핀 루손섬 이야기입니다.

파도에 휩쓸려 오키나와(류큐국)를 지나,

그는 더 남쪽의 따뜻한 땅, 낯선 문화와 문명이 공존하는 곳에 닿게 되죠.

그곳은 바로 **비간(Vigan)**이었습니다.


🏝️ 비간, 동서양이 교차하는 도시

 

문순득이 머문 **비간(Vigan)**은 루손섬 북서부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,

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였습니다.

이곳은 중국계 상인, 스페인 통치자, 필리핀 원주민이 함께 어울려 사는,

말 그대로 문화의 용광로였어요.

비간은 지금도 ‘스페인풍 거리’로 유명한데,

이 시대에 이미 유럽식 건축, 중국식 점포, 원주민의 복식이 공존했죠.

조선의 유교적 사회에서 자란 문순득에게 이 풍경은 그야말로 이문화 충격이었습니다.


⛪ 성당과 닭 모형, 낯선 신의 상징

 

비간에서 문순득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 중 하나는

바로 **성 아우구스티노 성당(St. Augustine Church)**이었습니다.

스페인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 성당은

석조 건축물, 커다란 아치, 장식이 가득한 제단,

그리고 무엇보다도 **첨탑 꼭대기의 ‘닭 모형’**이 인상 깊었어요.

닭 모형은 베드로 사도의 회개를 상징하는 것으로,

기독교 성당의 전통 장식이었지만

조선인 문순득에게는 그 의미를 도무지 알 수 없는 ‘서양의 상징’이었죠.


🪁 “이대로 있을 수 없다” – 연줄을 꼬다

 

비간에서 문순득은 억류 상태였지만,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습니다.

생계를 위해 직접 연날리기 줄을 꼬아 판매하기 시작한 거죠.

조선에서 익힌 기술로 만든 이 연줄은

가볍고 질기며 길게 뻗어 잘 끊어지지 않아

현지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.

 

📌 이 작은 활동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서

조선 기술의 전파이자

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었습니다.


🔒 왜 억류됐을까? 교류 없는 외교의 벽

 

문순득은 여송국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었습니다.

그 이유는 간단했어요.

조선과 류큐국, 청나라 사이에는

표류인 처리에 대한 관례와 협약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,

조선과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필리핀 간에는

그 어떤 외교 채널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.

 

📌 다시 말해, 문순득은 정체 불명의 외국인이었고,

그는 억류 대상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.

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

그는 현지인과 교감하고, 기술을 나누며,

억류된 손님에서 존중받는 존재로 변화해갑니다.


✍️ 조선 민간인이 처음 마주한 서양의 얼굴

 

비간에서 문순득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체험합니다:

항목
문순득이 마주한 세계
종교
가톨릭 미사, 십자가 상징
인종
스페인인, 원주민, 혼혈
복식
노출도 높은 유럽식 의상
건축
석조 성당, 아치형 구조
문화
라틴어 음악, 서양 의례

그는 이 세계를 두려움 대신 호기심으로 바라봤고,

그 체험은 『표해시말』에 고스란히 기록되었습니다.


🔜 다음 편 예고

📍 4부: “대륙의 법을 만나다” – 청나라 복건성 체험기

드디어 대륙에 도착한 문순득.

조선보다 훨씬 거대한 질서 속에서 그는 다시 한 번 정체성을 묻습니다.


"불행이라 여긴 유배와 표류는, 천명이 숨겨놓은 만남의 포석이었으니 — 인간사 새옹지마란 결국, 그 끝에 가서야 비로소 이름을 얻는다."


🔖 요약

항목
내용
도착지
여송국 비간(Vigan)
특징
다문화 도시, 스페인 식민지
경험
성당, 기독교 문화, 닭 모형 첨탑
생존 방식
연줄 제작 및 판매
억류 이유
조선-스페인 간 교류 부재
의의
조선 민간인의 서양 문명 체험