안녕하세요. 키갈남입니다 😊
오늘은 조선 어부 문순득이 도착한 세 번째 땅,
바로 여송국(呂宋國), 지금의 필리핀 루손섬 이야기입니다.
파도에 휩쓸려 오키나와(류큐국)를 지나,
그는 더 남쪽의 따뜻한 땅, 낯선 문화와 문명이 공존하는 곳에 닿게 되죠.
그곳은 바로 **비간(Vigan)**이었습니다.

🏝️ 비간, 동서양이 교차하는 도시
문순득이 머문 **비간(Vigan)**은 루손섬 북서부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,
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였습니다.
이곳은 중국계 상인, 스페인 통치자, 필리핀 원주민이 함께 어울려 사는,
말 그대로 문화의 용광로였어요.
비간은 지금도 ‘스페인풍 거리’로 유명한데,
이 시대에 이미 유럽식 건축, 중국식 점포, 원주민의 복식이 공존했죠.
조선의 유교적 사회에서 자란 문순득에게 이 풍경은 그야말로 이문화 충격이었습니다.
⛪ 성당과 닭 모형, 낯선 신의 상징
비간에서 문순득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 중 하나는
바로 **성 아우구스티노 성당(St. Augustine Church)**이었습니다.
스페인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 성당은
석조 건축물, 커다란 아치, 장식이 가득한 제단,
그리고 무엇보다도 **첨탑 꼭대기의 ‘닭 모형’**이 인상 깊었어요.
닭 모형은 베드로 사도의 회개를 상징하는 것으로,
기독교 성당의 전통 장식이었지만
조선인 문순득에게는 그 의미를 도무지 알 수 없는 ‘서양의 상징’이었죠.

🪁 “이대로 있을 수 없다” – 연줄을 꼬다
비간에서 문순득은 억류 상태였지만,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습니다.
생계를 위해 직접 연날리기 줄을 꼬아 판매하기 시작한 거죠.
조선에서 익힌 기술로 만든 이 연줄은
가볍고 질기며 길게 뻗어 잘 끊어지지 않아
현지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.
📌 이 작은 활동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서
조선 기술의 전파이자
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었습니다.

🔒 왜 억류됐을까? 교류 없는 외교의 벽
문순득은 여송국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었습니다.
그 이유는 간단했어요.
조선과 류큐국, 청나라 사이에는
표류인 처리에 대한 관례와 협약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,
조선과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필리핀 간에는
그 어떤 외교 채널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.
📌 다시 말해, 문순득은 정체 불명의 외국인이었고,
그는 억류 대상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.
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
그는 현지인과 교감하고, 기술을 나누며,
억류된 손님에서 존중받는 존재로 변화해갑니다.
✍️ 조선 민간인이 처음 마주한 서양의 얼굴
비간에서 문순득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체험합니다: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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항목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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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순득이 마주한 세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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종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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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톨릭 미사, 십자가 상징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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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종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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스페인인, 원주민, 혼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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복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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노출도 높은 유럽식 의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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건축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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석조 성당, 아치형 구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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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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라틴어 음악, 서양 의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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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는 이 세계를 두려움 대신 호기심으로 바라봤고,
그 체험은 『표해시말』에 고스란히 기록되었습니다.
🔜 다음 편 예고
📍 4부: “대륙의 법을 만나다” – 청나라 복건성 체험기
드디어 대륙에 도착한 문순득.
조선보다 훨씬 거대한 질서 속에서 그는 다시 한 번 정체성을 묻습니다.
"불행이라 여긴 유배와 표류는, 천명이 숨겨놓은 만남의 포석이었으니 — 인간사 새옹지마란 결국, 그 끝에 가서야 비로소 이름을 얻는다."
🔖 요약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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항목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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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용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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도착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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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송국 비간(Vigan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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특징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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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문화 도시, 스페인 식민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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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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성당, 기독교 문화, 닭 모형 첨탑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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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존 방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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연줄 제작 및 판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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억류 이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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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선-스페인 간 교류 부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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의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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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선 민간인의 서양 문명 체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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